- 일시: 2009년 8월 11일 ~ 13일
- 장소: 호주 시드니, 캔버라
* 자료: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연대 페이스북 페이지, 한국신문 (The Sydney Korean Herald)
* 업데이트: 2023년 02월 16일, 11.30PM (AEDT)




길원옥 할머니 ‘위안부 결의안’ 채택 호소
길원옥 할머니 “이번엔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사흘간 연방의원 대상으로 위안부 결의안 채택 호소
8.15 광복 64주년을 맞아 호주를 찾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 동안 캔버라에서 연방의원 의원들을 잇따라 만나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호소했다. 의원들은 입을 모아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답했다.
길 할머니의 연방의원 면담에는 한국에서부터 할머니와 동행한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함께 하는 호주친구들 (FCWA)’의 송애나 대표간사가 동행했다.
길 할머니는 호주 도착 첫날인 11일 연방의회 의사당 내 의원 휴게실에서 연방하원 인권소위 위원장인 케리 레아 의원과 인권문제를 전담하고 있는 마이클 댄비 의원을 만났다. 길 할머니는 “이번까지 모두 세 차례 호주를 방문했는데 아지도 호주 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 올해에는 꼭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길 할머니와 송애나 대표간사는 이어 의사당 로비에서 연방의회 청원서 접수담당 직원을 만나 호주에 거주하는 923명의 서명이 든 청원서와 전 세계에서 답지한 청원 엽서 600여통을 정식으로 접수시켰다.
길 할머니는 12일 오전 주캔버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갖고 일본정부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으며, 오후에는 호주국영 ABC라디오와 인터뷰를 가졌다.
길 할머니는 또 캔버라 방문 사흘째인 13일 그레이엄 페레트 의원과 존 머피 의원 등 4명의 의원들을 잇따라 만나,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저녁 시드니로 이동한 길 할머니는 14일 오후 시드니 한인회관에서 호주교민포럼과 FCWA가 공동으로 마련한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건립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에 참석해 한인들을 대상으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한다.
김인구 기자 | 한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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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의미있는 캔버라 방문 ‘사흘’
호주 연방의회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위해 한인들 힘 모아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는 호주 연방의회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줄 것을 호소하기 위해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 캔버라에 머물렀다.
길 할머니는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함께하는 호주 친구들 (FCWA)’의 송애나 대표간사와 함께 캔버라에서 매일같이 연방의사당을 방문했다. 의정활동으로 바쁜 의원들의 면담시간은 수시로 연기되거나 바뀌었다.
팔순을 넘긴 할머니에겐 너무나 빡빡하고 힘든 일정이었다. 더욱이 할머니는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여행의 피로도 풀지 못하고 힘든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11일 오전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캔버라로 이동해, 강행군을 시작했다.
면담 일정을 관리하고 길 할머니를 부착하며, 통역까지 1인 3역을 맡은 20대의 송애나대표간사에게도 다소 힘든 일정을 할머니는 ‘힘들다’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래도 면담이 계속되면서 할머니가 점점 피곤해하셨다”라고 송 대표간사는 전했다.
길 할머니가 면담한 의원은 마이클 댄비 의원과 하원 인권소위원회 위원장 케리 레아 의원, 한인 밀집지역이 지역구인 퀸즈랜드주의 그레이엄 페레트 의원과 스트라스필드의 존 머피 의원, 그리고 두 명의 인권 문제 전담 의원 등 6명이었다.
13일 오후 시드니로 출발하기 한시간 전에 갖기로 했던 또 다른 의원과의 면담은 의원이 일정을 맞추기 못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신 의원 보좌관을 만나,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위해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의원들을 상대로 한 길 할머니의 호소는 한결 같았다. “이번이 세 번째 호주 방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호주 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살날도 그리 많지 않다. 올해에는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게 할머니가 통역을 맡은 송대표간사를 통해 의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의원들 역시 할머니의 간곡한 호소에 관심있게 귀를 기울였으며, 결의안 채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13일 만난 한 의원은 “아침부터 A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날(12일) 할머니의 인터뷰 내용을 들은 시민들이 메일을 보내오고 있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케리 레아 인권소위 워원장은 11일에 이어 12일 별도로 길 할머니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위안부 이슈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것을 다짐햇으며, 일본 정권이 오는 8월 선거를 통해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뀐 경우,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길 할머니와 송애나 대표간사, 윤미향 상임대표 등은 11일 오후 연방의회 의사당로비에서 연방의원의 청원서 접수 담당 직원을 만나 호주에 거주하는 923명의 서명이 든 청원서와 전 세계에서 답지한 청원엽서 600여 통을 정식으로 접수시켰다. 모두 서명자의 사인이 든 청원서였다.
담당 직원은 오는 17일 열리는 의회에서 청원서가 접수된 사실이 공식 발표될 것이며, 담당 장관이 2주일 이내, 어떻게 처리됐는지에 대한 답변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인이 없는 청원엽서 300여 통은 길 할머니와 면담을 가진 의원들에게 전달됐다. 개인의 사인이 없는 청원서는 접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인 밀집지역이 지역구인 페레트 의원과 머피 의원은 혹시 자신의 지역구 유권자가 서명자 명단에 포함돼 있는지 유심히 살피기도 했다고 송대표간사는 전했다.
길할머니의 호주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지난 2007년 3월 같은 위안부 피해자인 호주의 젠 러프 오헌 할머니, 대만 할머니와 함께 시드니에서 처음으로 열린 ‘수요집회’에 참석했으며, 지난해 8월에는 멜버른과 시드니를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정보의 공식사과를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길 할머니가 만난 연방의원들의 관심이나 반응만 놓고 보면, 피로도 잊은 채 강행한 사흘간의 캔버라 방문이 의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방의회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가 또다시 이슈로 제기될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연방의회가 오는 9월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할지는 미지수이다.
불과 10여 일 전 미국 방문의 여독이 가시기 전에 또다시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호주에 온 길원옥 할머니의 소원인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호주 연방의회 결의안 채택이 이루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14일 시드니 한인회관에서 열리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 후원의 밤 행사가 할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모으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길원옥 할머니, 캔버라서 첫 수요집회
한국신문은 길원옥 할머니의 사흘간 캔버라 방문 중 11일 하루만 동행 취재를 했다. 대신 12일 잇었던 주캔버라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와 호주국립대학(ANU)에서의 강연회 취재는 캔버라에 거주하는 한인여성 김수연 씨와 이소미 씨가 대신 맡았다. 김 씨와 이 씨는 국제결혼한인여성회 캔버라지부 회원으로, 조주용 캔버라 한인회장의 주선으로 취재를 맡았다. 두 분께 감사드린다 <편집자>
• 캔버라에서의 첫 수요집회
12일 오전 10시, 인적과 차량이 드문 한산한 주캔버라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한인들이 모여 있다. 10명 남짓한 일행 중 키 작은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아 저분이 길원옥 할머니인가 보구나!’ 상처 투성이인 몸과 마음으로 정말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께 어떤 식으로 첫인사를 드려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아 “할머니, 건강하시지요?”라고 여쭈었다. 힘든 일정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고 밝은 얼굴로 나의 작은 관심을 반가워해 주신다.
시간이 흘러도 집회참여 인원이 늦어 않는 걸 확인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길 할머니는 2002년부터 서울에서의 ‘수요집회’에 참석하셨다고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울에 계시는 한 계속하셨다고 한다. 어떤 날은 혼자서 계실 때도 있었다고 했다. 간혹 젊은이들이 함께 참석해 주면 ‘외롭고 힘든 일’을 시작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신다고 했다. 비록 서로 떨어져 살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할머니의 ‘힘든 일’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ANU에서의 강연회
행사 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조금 일찍 행사장인 ANU의 HC Coombs Building Lecture Theater에 도착을 했다. 오전 집회에서 만났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함께 하는 호주친구들 (FCWA)’, 시드니민족문화교육원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평양이 고향인 할머니는 열두 살 되던 해 일본의 공장에 취직해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말만 믿고 고향을 떠난 이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는 말씀으로 꺼내기 힘든 아픈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할머니에게 닥친 현실은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일본군인들의 참담한 성적 학대였다. 18세까지 중국, 만주 등지로 끌려 다니며 여자로서 견디기 힘든 갖은 고초를 당하시다 한국 땅에 돌아오실 수는 있었으나 가족이 있는 고향에는 돌아가지 못하는 처지가 되셨다고…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아픈 기억을 자꾸 들추어내며 여기저기 다니시는 이유를 말씀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치욕스럽고 아픈 과거를 잊고 사셨으나, 여든이 되어서도 일본정부가 아직 공식 사과조차 하지 않은 것을 보시고, 또 몇 남지 않은 생존자들이 모두 이 세상을 등지면 이 문제가 영영 묻힐 것을 걱정해 남은 여생을 ‘방관자’들의 관심을 모으는 일에 쏟으시기로 하셨다고… 그 ‘방관자’에 우리 두 사람도 포함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장은 약 60여 명의 호주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들로 들어찼다.
여자로서 차마 꺼내기 어려운 할머니의 아픈 과거가 ‘증언’으로 이어지는 동안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십 대 어린 소녀시절을 그리 처참하게 보내고 그 악몽으로 평생 힘들었을 그분들이 안타까워 가슴이 저려왔다.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의 윤미향 대표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 사업에 대해 “보다 많은 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또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인 박물관 건립을 위해 도움을 호소했다.
강연장을 빠져나오면서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이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그날이 더 빨리 오도록 하기 위해 보다 많은 이들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글 – 캔버라 이소미 &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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