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09년 8월 12일 (수), 오후 6시 30 ~ 7시 45분
  • 장소: 호주국립대학교 HC Coombs Lecture Theatre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in Canberra) 
  • 주관: FCWA, 민족교육 문화원
  • 후원: 국제 사면위원회
  • 도움주신분들: Dane Hunter Alston (한국학 박사과정), Ruth Barraclough 교수 (한국학), 사진작가 신상현님

* 작성인: 신준식 (2009) & 정영란 (2009), 옮긴이: 전영민
* 업데이트: 2023년 02년 11일, 10PM (A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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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음자료] 길원옥 할머니의 2009년 캔버라 강연
Public Lecture with 'Comfort Women' survivor, Gil Won Ok in 2009: https://youtu.be/q-Nz3gdxbvg


By 신준식

길원옥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공개 강연은 8월 12일, 6시 15분 부터로 예정되어 있었다. 5시 10분이되자 제일 먼저 시드니에서 행사의 음식을 맡은 시드니 민족교육 문화원 세명의 회원들이 신준식 회장과 함께 강연장에 나타났다.

 

5시 45분이 되자 서양 학생 두명이 호주 국립대학 (ANU) HC  Coombs Extension, Lecture Theatre로 들어왔다. 한명은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다른 남학생은 앞으로 남북한에 대한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 나이가 좀 든 대학생이었다. 6시쯤 되자 약 3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음식은 행사가 끝나고 먹으려 했으나, 참석자들이 배가 고플거라는 생각에 음식을 먼저 먹고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강의장 밖의 홀에서 김승일, 안명례 (윤종인 이사장 부인)과 정영란 회원 등이 시드니 민족교육 문화원 회원들이 시드니에서 만들어 온 음식 (잡채, 월남쌈 등) 과 5시10분 부터 강연회장 옆 작은 부억에서 만든 음식 (샌드위치)와 수박 등 과일 등을 먹었다.

 

충남대학교에서 방문교수로 와있는 이기훈 교수 (환경경제학)는 음식이 참 맛있다고 했다. 캔버라에서는 이렇게 정성스럽고 맛있게 만든 음식이 못 드신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도 음식을 참 맛있게 먹었다.

 

6시 10분쯤 되자, 약 60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참석자의 숫자로 보아서 행사는 잘 될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통상 ANU 공개 강의에는 주관하는 학과의 관계자들을 포함해서 약 30명이 모이면 많이 모이것이다. 

 

그래서 여정된 공개강의 시간인 6시 15분 보다 좀 늦은 6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준비된 의자 64개가 가득차고, 몇 개를 더 놓았다. 약 70명은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청중들 앞에 놓은 강연자들을 위한 자리에는 윤미향 정대협 대표, 길원옥 피해자 할머니, 통역을 맡은 송애나씨 그리고 사회를 맡은 ANU 아시아학 학부, 한국센터 (Korean Centre) Ruth Barraclough 교수가 앉았다.

 

사회를 맡은 Ruth Barraclough 교수가 먼저 유창한 한국말로 멀리서 오신 길원옥 할머니께 감사말을 드리면서 행사 시작을 알렸다.

길원옥 피해자 할머니는 본인이 왜 위안부로 끌려 갔는지, 그곳에서 어떻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맡았는지 등을 설명하셨다.

평양이 고향인데, 13세이 되던 해, 철없던 시절, 공장에서 기술을 준다는 말을 듣고, 부모형제들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나섰다. 어디론가 한참 갔는데, 그곳에는 공장은 없었고, 군인들만 있었다.

 

군인들이 옷을 벗기려 하자, 막 울었다.

그들이 나쁜짓을 하려 하자, 반항했다. 그들은 어린 소녀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발로 문질러냈다.

어린 소녀는 안 당하려고 울고 반항하고 했다. 그러나 그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다 커가는 처녀가 생리를 하는 것도 모른 그 소녀는 그냥 피가 나는 줄 알고, 헝컾으로 막기도 하고… 또 걱정도 많이 했다.

그들은 이런 소녀의 걱정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방으로 들어와 나쁜짓을 했다.

 

이 강연회에는 한국계 연방 공무원들, 호주계 연방 공무원들, 부모를 따라 온 한국계 어린 학생들, 한국계  ANU 학생들, 일본계 학생들, 호주 대학생들, 아시아 학부에 근무하는 교수들 그리고 민족교육 문화원 회원 등이 참석했다.

 

나는 할머니의 증언을 세번째 듣는다. 두번은 한국사람들이 다수였던 강연회였다. 오늘은 다양한 출신의 대학생들이 듣는 증언을 함께 들었다.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마음이 더 무거웠다.

 

당시 어린 소녀였던, 반항을 하면… 욕구를 채우지 못한 군인들이 칼집으로 때려서 피가 나서, 옷과 살이 함께 붙어 버리기도 했다. 반항을 하면, 그들은 군인들을 더 드려 보냈다.

 

참석자들은 숨을 죽이고, 상기된 얼굴로 길원옥 할머니의 증언을 듣는다.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은 할머니의 목소리와 눈에 나는 눈물을 가슴으로 듣는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또 숙연한 분위기에서 숨을 죽이고, 송애나가 완벽하게 직역하는 통역을 듣는다.

 

할머니의 목소리와 눈물, 송애나의 완벽한 통역은 한국 일본 호주 학생들의 가슴에 와 닿는다. 학생들을 포함한 참석자들 상기된 얼굴과 눈물이 할머니의 가슴과 만난다.

고통의 얼마나 지났을까, 소녀 길원옥은 18세가 되었다. 만 5년을 이런 고통을 당했다.

군인들과 위안소를 운영하던 사람들이 없어졌다.

 

해방이 되었다. 나이든 위안부 피해자들이 쌀을 구해 와서 밥을 해 먹곤했다.

웅성거림이 들린다. 이번 배를 타야 고향을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힘을 내서 배를 탓다. 고향 평양으로 가는 줄 만 알았다.

그러나 배는 인천 앞 바다에 도착했다.

 

힘없이, 냄새가 무척나는 옷을 입고, 넋이 나가 있는데, 어느 사람이 다가 왔다.

나는 평양에 가야 한다고 하니, 일단 나를 따라가서 목욕도 하고, 새옷도 입고 그리고 나서 평양에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를 따라 갔다. 그곳에서 일도 하고… 나중에 다른 곳에서 많은 고생을 하고 지내면서 끝내 고향은 가지 못했다.

그리고 길원옥 할머니는 정대협과 함께 수요집회를 포함해서 인권 운동을 하게된 사연을 말씀하셨다.

 

 

283명이 정대협에 신고를 했는데… 이제 가장 나이가 어린 82세, 83세이고, 대부분 98-90세가 되었는데, 현재 91명이 살아 계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길원옥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왜 당신이 이런 운동을 하시는지를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이런 운동을 하는 것은 “전쟁이 없는 나라, 평화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런 뼈 아픈 일을 당했기 때문에 이런 운동을 합니다.”

할머니는 “전쟁이 있으면 여성이 당합니다. 지금 싸우는 나라에서도 여성들이 당합니다” 라고 하신다.

그리고 앞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부탁하신다.

 

할머니는 사람들이 전쟁에서 우리들이 당한 것을 알아야, 우리 만큼 안 아프게 된다. 덜 고통을 당한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젊은이들이여, 전쟁이 없는 나라 평화의 나라를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들이 다 할수 없으니 여기있는 젊은이들이 만들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픈 몸을 이끌고 이곳에 왔습니다” 라고 부탁하셨다.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말씀 하신다.

"저 사람들이 생각할때 우리가 다 죽으면 끝나는 줄 아는데, 우리가 다 죽어도 역사는 묻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씀 또 하신다.

 

그래서 서대문에 박물관을 짓는다고… 여성들에게 못된 짓을 했구나,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정부나 큰 회사가 돈을 내면 쉬운데… 박물관을 짓는것도 조금씩 걷어서… 그래서 힘들다고 하신다.

그래도, 뼈아픈 것을 후손들에게 알려 이런 일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왔다고 다시 말씀하신다.

 

큰 박수를 받으며, 이렇게 할머니의 강연을 막을 내렸다.  나는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부탁하신 말을 노트에 적었다. 그리고 가슴에 새겼다.

 


By 정영란

 

승일언니가 운전을 하시고 윤샘 사모님 안명례님과 영란이 저 이렇게 셋이서 먼길 다녀왔습니다.
오후 2시정도 출발해서 3시간 넘게 달려 6시부터 시작되는 강연에 참석했고 밤 10시즘 다시 시드니로 향해 새벽 1시넘어 집에 도착했습니다. 신샘은 거의 매주 시드니에 올라오시면서 이런일을 여러번 반복하셨겠다 생각하니 한편으로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일언니는 회사까지 휴가를 내고 아침부터 강연회시작전 Dinner를 직접 준비하시느라 애쓰셨고 또 혼자 오고가고 운전을 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승일언니가 준비하신 음식들에 많은분들이 너무 좋아하셨고 맛있게 행복하게 모두들 드셨습니다. 명례사모님이 써빙에 뒷처리를 도우시느라 고생하시구 강연회 후에 저녁식사 뒷풀이까지 내셨습니다. 신준식샘과 대근오빠가 캔버라에서 현지 사람들 모으시고 준비하시느라 또한 애쓰셨구요.


강연회는 조금 걱정했던것보다는 60명정도가 넘는 많은 인원이 참석해서 강연회장을 가득 메워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말씀을 하시면 송애나씨가 통역을 하는 식으로 강연은 진행되었고 마지막으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윤미향 대표의 정리발언이 있고 몇몇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정신대,종군위안부,일본군 성노예-길원옥 할머니를 지칭하는 여러 호칭들이 있습니다. 정신대나 종군위안부등은 일본군측에서 자기들 입장에서 사용되던 소프트한 표현들 이기도 하고 일본군 성노예는 또한 할머니들에게 직접적으로 너무 잔인하게 또는 심하게 표현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칭하는것부터 어떻게 이문제를 바라보냐에 따른 입장들이 있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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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정대협 윤미향 대표의 발언과 길원옥 할머니의 증언을 일부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1990년 설립되어 1991년부터 피해자 할머니들과 연결되었고 처음으로 김학순 할머니께서 정신대문제를 세상에 드러내시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1992년부터 윤미향씨(정대협대표)는 상근자로 일을 시작했고 그해 8월 보스니아 전쟁중 일어났던  여성에 대한 집단적,조직적 성폭력에 대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관련 분위기가 형성되어 아시아연대단위에서 유엔에 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문제 관련해서는  이미 유엔이 전쟁후 조사를 하던 시기 여러문서 및 사진자료들을 다 보유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이렇게 다 알고있었음에도 지금까지 국제사회 차원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유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또한 무관심,방관하던 우리모두의 책임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유엔신고당시 일본군 성노예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고 사과하라는 유엔권고가 이뤄졌으나 일본에서는 인정하지않고 거부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 오만한 태도는 변하지 않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부분까지 생겨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2007년 미국하원에서 만장일치로 유엔권고사항과 같은 내용의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뒤를 이어 국제사회 일부에서도 일본의 사과를 끌어내고자 움직임들이 따랐습니다. 유럽연합,네덜란드,캐나다,대만등도 같은 내용의 결의안이 통과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일본군성노예 피해자가 있는 호주에서는 아직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아 이렇게 호주에 방문하여 할머니의 생생한 목소리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일본내에서는 1997년부터 2005년사이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부분을 삭제, 매춘부라는 망언들이 이어지고 위안부활동가들에 대한 테러,협박등이 자행되었습니다. 그러다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들을 접하면서 일본시민운동이 불붙기 시작해 8개 지방시의회 차원에서의 국제사회의 결의안을 수용하자는 결의들이 이뤄졌습니다. 일본에서는 8월말 선거에서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를 예상하는 중요한 선거로 이는 위안부운동관련해서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할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길원옥 할머니께서는 아픈몸을 이끌고 머나먼 이땅까지 와서 왜 당신의 고통스런 지난날을 증언하는지에 대해서 후손들이 당신과 같은 일을 다시는 겪지않게 하기위해서이고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정대협과 함께하시기 전 세상앞에 당신이 너무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고통을 곱씹으며 살아왔는데 지금은 그런 고통을 준 놈들, 그런 잔인한 폭력을 자행한 일본놈들이 부끄러운 짓을 한것이지 당신이 왜 부끄럽냐면서 울분하셨습니다.


지금 이순간도 전쟁이 있는 어느곳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수 있다는 것을 우리모두 자각하여 우리사는 이땅에 전쟁없는 고통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길원옥 할머니 당신이 겪었던 개인의 고통으로 기억하지 말고 우리들 본인들 하나하나가 겪었다고 생각하고 또 언제 어느때 우리모두 그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지금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을 건립중인데 할머니께서 마음을 많이 쓰고 계셨습니다. 박물관을 통해 평화와 인권에 대해서 후손들에게 교육하고 활동을 지원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2003년 12월부터 건립추진이 시작되어 총 건립예산 35억원중 15억원이  순순 모금,후원들을 통해 모아졌다고 합니다. 15억원은 수녀,학생,직장인들등의 노동자 서민들의 작은 후원들이 모아져 이룬 금액이고 또 일본내 단체들도 10억을 자체적으로 모아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은 10억만 더 모으면 박물관건립이 하루속히 이루어질거 같습니다.


문화원에서도 승일언니의 Catering과 윤종인이사님께서 후원을 하셨습니다.


14일 금요일에도 시드니에서 관련행사를 한인회관에 한다고 합니다. 지금쯤 할머니께서도 시드니에 올라오셨겠네요.
관심있는 분들은 참여하셔도 좋을거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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